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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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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란?
대체로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시대에 음악의 중심이 빈으로 옮겨졌으므로, 하이든 이후를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할 때도 있다. 이 시대를 고전파음악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음악이 정연한 형식을 존중하고 균형감을 주체로 하는 유형을 지켰기 때문이다. 고전파의 어원에 해당하는 라틴어 classicus는 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에서는 모범적이고 영속적이며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미적 이상을 추구한 것을 가리킨다. 이 미의 이상이란 형식의 조화와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다.

바로크시대의 음악에서 다음의 고전파음악에 걸쳐, 음악의 창작이나 연주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적인 체제가 변화하였다. 시민을 위한 음악적인 시설이 생기고 공개연주회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교회에의 봉사를 지양하여 대중과 음악적 대화를 교류하기에 이르렀다. 1725년 프랑스의 작곡가 필리도르는 파리의 궁전에서 콩세르 스피리튀엘이라는 공개연주회를 가졌다. 이것이 오늘날의 연주회의 시초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때까지는 왕의 허가가 필요하였다. 독일에서는 1722년 라이프치히에서 텔레만에 의하여 콜레기움 무시쿰(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연주단체)이 결성되어 시민에게 음악을 해방시켰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독일 내의 다른 도시나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절대주의적인 왕권을 대신해서 시민계급이 문화를 담당함에 따라, 공개연주회의 원칙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기능이 분화되어, 19세기 이후 다수의 명연주자 ·명지휘자가 음악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도 이같은 공개연주회를 중심으로 하여 음악생활이 영위된 결과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의해 구축된 빈 고전파 이전에 전(前)고전파 및 로코코 음악양식이라 불리는 것이 있었다. 바흐의 죽음으로부터 모차르트의 죽음까지는 불과 40년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사이에 음악의 사고방법이나 감상태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크음악의 장중한 궁정적(宮廷的)인 분위기나 서사시적 성격, 복잡한 다성(多聲)음악적 구성을 일반대중은 구식이라 느끼게 됨으로써 더 한층 간소한 형식, 경쾌한 기분,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을 바라게 되었다. 프랑스의 다캥이나 이탈리아의 D.스카를라티의 쳄발로음악에서 볼 수 있는 로코코양식은 각별히 섬세 ·우아한 기분과 경쾌한 즐거움을 특징으로 하였다. 독일에서는 바흐의 두 아들 프리데만과 필립 에마누엘이 인간적 감정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향하여 슈타미츠를 중심으로 한 만하임악파의 기악 작곡가들과 새로운 심리적인 다이너미즘을 개척하였다.

이와 함께 고전파의 소나타가 크게 발전하였다. 바로크시대에도 3 ·4악장의 소나타 형식은 있었으나 각 악장은 보통 단 하나의 기본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가 악장의 기분 ·템포 ·리듬을 규정하고 있었다. 로코코시대에서 전고전파시대에 걸쳐, 사람들은 감정의 움직임이나 다이내믹한 마음의 움직임을 차라리 자연에서 느끼게 되어, 그 결과 한 악장 속에서도 성격적으로 대비되는 주제가 채택되어 다이내믹스나 리듬 ·음색 등의 대비가 이에 결부되었다. 다만 고전파 소나타의 특색은 추이(推移)와 대비의 요소가 다시금 높은 조화와 통일감에 싸여 있다는 점인데, 이같은 유기적인 조성과 이상적인 형체감의 결부는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고대의 조각이나 건축미를 재발견한 시대와 흡사한 것이었다. 하나하나의 장면이 간소화된 명확한 윤곽을 갖고, 전체적으로는 고대 조각과 같은 통일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글루크의 만년의 오페라에서 볼 수가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성숙기에서 베토벤의 중기에 걸친 작풍은 바로 고전양식의 전형이었다.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공(公) 밑에서,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밑에서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모차르트가 25세 때 빈으로 옮긴 후, 이 두 사람은 친교를 두터이 하여 빈 고전파의 봉우리를 쌓아올렸다. 하이든의 공적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고전파의 소나타 ·현악4중주 ·교향곡의 형식을 확립한 데 있는데, 만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듣고 감동, 최후의 노력을 《천지창조》 《사계(四季)》의 오라토리오에 기울였다. 모차르트는 놀랄 정도로 다재다능하고, 또 적응력이 강한 작곡가였다. 그는 각국을 여행하고, 당시 음악의 모든 형식과 양식을 흡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창조적인 개성 속에 받아들여 양식적으로 완성하였다.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 모든 분야의 명작 중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재능을 특히 잘 나타낸 것은 오페라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처음부터 독립된 인격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는 궁정악장이나 작곡가 등의 직함을 바라지 않고, 빈의 귀족계급과 대등하게 교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의 대화이고, 새로운 창조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악의 배후에는 당시 세상을 움직이던 프랑스의 혁명정신과 계몽주의에 유도된 새로운 시민계급의 윤리가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베토벤의 창작은 한 시기마다 새로운 과제를 자신에게 부과하여, 그것을 해결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교향곡 《제3번(영웅)》 《제5번(운명)》 《제6번(전원)》 《피아노소나타 작품 57(열정)》 등을 포함한 중기의 작품이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층 초월적인 세계의 신비를 보여주는 만년의 《피아노소나타》나 《현악 4중주》 등도 이것들에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리하여 고전파음악은 단음악(單音樂)의 이상적인 소나타 형식의 완성, 그에 따른 론도 소나타 형식의 파생에 따른 형식미를 중요시하여, 그것에 보편적 ·이상주의적인 감정을 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형식에서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이 태어나게 되었다. 화성(和聲)은 온음계적이고 명징(明澄)하며, 리듬은 명확하다. 음악은 그 때문에 투명하다.

이러한 고전파음악은 물론 그 이전의 바로크음악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또 당시의 사회정세나 문학, 기타 문화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바흐의 아들들의 단순하고 간명함을 추구한 태도와, 만하임악파의 솔직하고 보편적인 효과를 추구한 태도가 시류와 일치하여, 고전파음악을 발전시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로 이어지고, 베토벤에 이르러 정점(頂點)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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