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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노래가 중심으로 된 극의 형태로 상연, 음악을 위시하여 시?연극?미술?무용 등으로 이루어지는 극히 복잡한 예술을 말한다.
오케스트라 반주, 노래하는 드라마, 문학적 요소의 대사, 연극적 요소의 구성과 연기, 발레와 무용, 무대장치와 의상 등, 미술적 요소 ⇒ 종합예술

■ 오페라의 시작
17C 초 이탈리아 → 1640년경 마자랭 총리가 루이 14세 궁정에서

■ 3대 오페라
베르디의 '아이다(Aida)',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eme)', 비제의 '카르멘'(Carmen)

■ 오페라의 규칙
오페라가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면, 오페라의 노래를 모두 가사만 바꾸면 연극이 되고, 연극의 대사에 곡을 붙이면 모두 오페라가 될 것인가? NO.

오페라는 결코 노래로 하는 연극이 아니다. 연극과 다른 완전히 독자적인 장르인 오페라에는 오페라만의 규칙이 있다. -'월간 클래식 피플 97년 4월호' 중
① 오페라는 노래로 하는 것이다. - 말을 할 수 없고 노래밖에 할 수 없는 사람
② 오페라의 주인공은 여자이다. - 그녀의 이름이 타이틀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③ 여주인공들은 가련하게 희생된다. - 희생은 단순한 희생이 아닌 곧 죽음을 의미
④ 그런 여인들의 희생을 몰라주고 그녀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멍청한 남자가 바로 테너
⑤ 소프라노를 죽게 만드는 배후자는 바리톤이며, 테너는 바리톤에게 놀림만 당한다.
- 이제 미남 미녀 주인공들이 아닌 바리톤의 입장에서 오페라를 보라.
⑥ 또한 한 사람의 결정적인 사건 메이커는 메조 소프라노이다.
⑦ 오페라는 모두 비극이며, 그것은 죽음을 뜻한다.
- 비극이 아닌 오페라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하여 오페라와는 다르게 취급.
⑧ 아리아가 불려지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진행이 중단된다.
- 사실 아리아는 줄거리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아리아가 불리어지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연극적 진행은 멈추는 것이다. 즉 아리아는 연극의 독백과 다름없다. 아리아는 무대 위의 다른 가수들은 듣지 못하며 오로지 관객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이 많다.
⑨ 중창의 경우는 오페라의 진행상 가장 중요하다.
- 노래하고 있는 그 배역 상호간의 의사전달이 중요, 진행의 흐름은 더욱 발전됨.

■ 오페라의 종류

①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 정가극)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로서, 레시타티브와 아리아를 중히 여기며, 중창이나 합창은 간혹 사용한다. 소재로는 신화나 고대 영웅적인 테마를 주로 사용하는 오페라이다.

②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
17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에 대해 프랑스에서 나타난 대 가극이다. 이것은 19세기 프랑스의 특징있는 양식으로, 서사시적이고 역사적인 성질의 비극을 테마로 한다. 합창을 중히 다루고, 발레를 넣어 프랑스 사람들의 기호에 알맞게 했다.

③ 오페라 부파(Opera buffa : 희가극)
18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생긴 희가극으로서, 차차 유럽 여러나라에 퍼졌는데 19세기 wndduqRK지 성행하였다. 소재는 서민생활이나 인정미담을 주로 하였고, 그 취재나 형식을 확립한 것은 페르골레지였다.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럴까"와 롯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이 이에 속한다.

④ 오페라 부프(Opera bouffe)
프랑스의 희가극으로, 어원적으로 오페라 부파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양자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페레타와 비슷한 가벼운 음악희극으로 대화의 부분에 대사를 사용한다. 뒤니(Duni)가 창시자이다.

⑤ 오페라 코미프(Opera comique)
희가극의 일종으로, 음악 사이에 대화와 독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코미크라 하지만 즐거리가 희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에는 희극적이었지만, 후에 그와는 상관 없이 대사가 있는 오페라가 되었다. "카르멘"이나 "마농" 등의 오페라를 오페라 코미크라고 부르는 작곡가들도 있다.

⑥ 오페레타(Operetta : 경가극)
오페레타를 경가극이라고도 하며, 극적인 진행에 있어서 대사를 동반한다. 여기에 노래와 무용이 들어가기는 해도, 음악적인 내용은 낮은 편이며 또한 오케스트라도 소규모적이다. 이러한 작품의 예로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의 남작", "박쥐" 등이 유명하며, 밀뢰커의 "거지 학생" 등이 이에 속한다.

■ 오페라의 역사

'오페라'라는 골치 아픈 물건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 알아내서 야단치려는 사람들은 오페라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 연극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오페라의 모든 것을 그리스인에게만 따지는 것은 불공평하다. 고대 그리스 작가 에이스 킬로스가 첫 비극을 쓸 무렵 메소포타미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극동 아시아에서는 이미 똑똑한 사람들이 3천년간이나 음악과 연극을 하고 있었다.
기원전 600년경 스파르타의 공세에 몰린 그리스인 수백 명이 배로 탈출하여 이집트에 피난했을 때 파라오는 이들에게 도시를 주어 살게 했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의 후한 인심과 멋진 제전극을 보고 감명받았으며, 이 영향이 전해져 그리스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록 뮤직의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흑인들의 로큰롤을 부른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누가 오페라를 만들었는지 야단치고 싶으면, 이집트인, 메소포타미아인, 중국인도 야단쳐야 한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야단을 맞을 대상은 이태리인 들이다. 왜 그런지 차근차근 따져 보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그리스 비극은 노래로 했다. 당시의 음악은 사라져 버렸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강조한 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은 남았다. '시학'(Art of Poetry)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예술 작품'이란 뜻)을 이렇게 정의했다. '비극이란… 중요하고 완전한 어떤 사건을 모방하는 것으로…장식된 언어로 즐거움을 주어야 하며… 멜로디도 중요하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음악이 따로 독립되지 않았다. 그것은 음악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음악을 단단히 묶어 두지 않으면 힘이 넘쳐서 드라마를 압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로 비극과 희극을 섞지도 않았다. 고대 그리스 희극(코미디)은 보통 말로 대사를 했고 코러스 부분만 노래로 했다.
로마 연극도 음악을 사용했다. 코러스 부분은 물론 노래로 했으며 배우들도 가끔씩 대사를 노래로 했다. '트로이 사람들' 등 세네카가 쓴 비극은 모두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노래로 하는 코러스 부분이 들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로마 희극이 요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명한 플라우투스, 테렌스의 작품들을 보면 연극 속에 노래가 많이 들어 있다. (스티븐 손다임의 196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전으로 가는 길에 생긴 일'이란 작품은 실제로 고대 로마 코미디 대본을 각색하여 만든 것이다.)

중세기
오페라의 탄생 과정은 중세에 아주 오랫동안 멈춰진다. 중세기 혹은 암흑시대의 기독교도들 중에는 정신 나간 광신도들이 많았고, 이 꽉 막힌 기독교 환자들은 유태인과 이슬람 교도만 학살한 게 아니라 기독교도를 포함한 누구라도 자유로운 생각을 하면 모조리 죽였다. 결국 아무도 생각을 않게 되었고 수백 년을 그렇게 살았다.
이 시기에는 음악은 한 조각 살아 남았다. 사제와 수녀들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 간단한 연극을 하며 그레고리안 찬트를 했다. 이 교회 연극 중에서 유명한 것이 '쿠엠 쿠에리티스'로 '누구를 찾느냐?' 란 뜻이다. 내용을 보면,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러 무덤에 들어간다. 그러자 천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묻는다. 예수님을 찾는다고 대답하자, 천사는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간단한 내용이었으나 점점 줄거리가 생기고 등장 인물도 많아지면서 결국은 예수의 수난을 모두 공연하게 되었고 일부분이나 전체를 노래로 했다.
이것이 점점 연극적으로 변하면서 종교적인 면은 희박해졌다. 무서운 악마와 괴물이 대중의 인기를 끌자 대주교들은 이 연극을 교회에서 쫓아냈고 연극은 마을의 장터로 옮겨졌다. 그럴 무렵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도 생각하는 힘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르네상스'라고 하며 '부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였다.

르네상스
당시 이태리는 어떤 동네였을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고향이었고 가짜 사제 비발디가 수도원에 숨어서 히트곡을 작곡하던 곳이다.(수도원이라 곳이 머리를 깎아야 하는 것은 불편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점이 있었다.) 이태리는 지중해 무역으로 돈을 번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은 옛이집트 왕들처럼 '뭐 좀 재미있는 일 없나' 찾게 되었다.
1580년 플로렌스에는 죠바니 바르디 백작 후원으로 '카메라타(Camerata)라는 클럽이 생겼다. 클럽멤버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그리스 문화를 토론했고 곧 한 가지 이론을 발표했다. 즉, 심각한 드라마와 심각한 음악을 결합하면 그 힘이 배가한다는 것이었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알고 있던 진리를 인류는 수 천 년 뒤에야 다시 깨달았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에서 배웠고 이태리인들은 그리스에서 배웠다.(그러나 나중에 바그너가 혼자서 득을 본다.)
바르디 백작은 카메라타 멤버들에게 고대 그리스 예술을 재현하도록 후원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최초의 '진짜 오페라'다. 자코포 페리는 오타비오 리누치니의 대본에 맞춰 '다프네'(Dafne)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이것이 1597년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1997년을 '오페라 탄생 400주년'이라고 했다.) 내용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로 변한 여자' 이야기다. 이 작품은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 작품의 음악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어느 면으로 보나 드라마를 위한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 오페라의 중요한 법칙이 되었으니 '드라마가 음악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페리와 리누치니가 1600년에 만든 '유리디체'는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오페라다. 당시 사람들은 이 신제품을 아주 좋아했고 덕분에 오페라는 곧 로마와 베니스를 거쳐 이태리 전역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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